아리를 집에 데려오고 한두 달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처음 발견했을 때 피를 흘리고 기운 없이 있던 모습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힘이 빠져 보였습니다. 밥도 잘 먹지 않고 설사를 했고, 오줌을 흘리는 일도 생겼습니다. 혓바닥과 코 주변이 하얗게 떠 보이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그냥 컨디션이 떨어진 정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느낌이 좋지 않았습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급하게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는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비장 쪽에 문제가 생겨 피가 제대로 돌지 않는 상황이었고, 그대로 두면 바로 위험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수혈이 필요했던 밤
선생님은 약물로 버틸 수 있는지 한참을 봐주셨습니다. 그런데 결국 수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문제는 수혈이었습니다. 밤늦은 시간에 고양이 피를 바로 구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때 집에는 바비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급한 상황에서는 고양이끼리 수혈을 시도해볼 수 있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물론 무조건 안전한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수술을 하지 못하면 아리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집으로 가서 바비를 데리고 다시 병원으로 갔습니다.
바비는 마취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혈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가만히 있어주었습니다. 아리와 같이 산 지 오래된 것도 아니었는데, 그 밤의 바비는 마치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는 것처럼 버텨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흔들렸습니다. 저는 혹시라도 아리를 잃게 될까 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나 싶었고, 아내는 많이 울었습니다.

큰 수술과 선생님의 배려
수술은 밤을 지나며 이어졌습니다. 문제가 되던 비장은 제거했고, 찢어져 있던 방광도 다시 손을 봐주셨습니다. 배를 연 김에 중성화 수술도 같이 진행해주셨습니다. 당시의 제 기억으로는 회복과 수술, 입원까지 합쳐 비용이 400만 원 정도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홍대에 있던 웰케어동물병원 이재덕 선생님이 본인도 부담하겠다고 하시며 비용을 많이 깎아주셨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150만 원 정도를 줄여주셨던 것 같습니다. 이재덕 선생님이셨고, 유기묘나 길고양이 중성화도 많이 도와주시는 분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돈도 돈이지만, 누군가 같이 살려보자고 해주는 느낌이 정말 컸습니다.
아리는 며칠 더 입원하면서 회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도 기운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에도 또 큰 고비를 넘겨야 했습니다. 그래도 수술이 잘 끝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퇴원 후, 매일 병원에 다니던 시간
퇴원 후에도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거의 매일 병원에 소독을 하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리는 이동장 없이도 제 품에 얌전히 안겨 차를 타고 병원에 다녔습니다. 처음 발견했을 때는 만져도 거의 반응이 없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제 몸에 기대고 저에게 몸을 맡겼습니다.
그때부터 아리가 저를 조금 더 믿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데려온 아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정말 우리 집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바비와 아리의 합사
집에는 이미 바비가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둘은 생각보다 잘 지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조심스럽게 바라보다가, 조금씩 가까워졌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같은 공간에서 쉬고, 서로의 거리를 알아가고, 나중에는 가까이 붙어 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바비가 없었다면 아리가 그 밤을 넘기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면 그때의 수혈 장면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바비가 아리에게 피를 나눠준 밤은 우리 가족에게도 쉽게 잊히지 않는 밤이었습니다.


아리라는 이름
아리라는 이름은 그냥 예뻐서 지은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순우리말로 힘내라는 뜻이 있다고 해서 붙였습니다. 처음 발견했을 때도, 다시 큰 수술을 해야 했을 때도, 정말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이름에도 그런 마음이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주인을 찾아주려고 동네 커뮤니티에도 올리고, 포인핸드 같은 곳도 찾아보고, 발견한 건물에도 공지문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끝내 찾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아리는 우리 집에 남게 됐습니다.

지금의 아리
시간이 지나면서 아리는 완전히 집에 적응했습니다. 캣타워도, 스크래쳐도, 밥그릇도 둘이니까 두 개씩 준비했는데 화장실은 둘이 이상하게 나눠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는 똥, 하나는 오줌.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둘이 그렇게 정한 것처럼 써서 웃기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아리는 그때의 모습과 많이 다릅니다. 겁 많고 아팠던 아이가 아니라, 집에서 편하게 자고, 바비와 함께 지내고, 제 옆에 와서 눕는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사진을 다시 보면 그때의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아리를 살리기 위해 뛰어다녔던 시간, 바비가 가만히 버텨주던 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조금씩 회복하던 모습까지요.

이 글은 정보를 주기 위한 글이라기보다, 우리 집에 아리가 오게 된 과정을 남겨두는 기록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흐려질 수 있으니까요. 아리가 어떻게 우리 가족이 되었는지, 바비가 그 밤에 어떤 역할을 해줬는지, 그리고 우리가 왜 아리를 더 특별하게 생각하는지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