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를 처음 본 곳은 제가 관리하던 건물의 외부 철제 계단 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살아 있는 고양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건물 관리를 하다 보면 주차장 구석, 화단 안쪽, 차 밑에서 다친 고양이나 아픈 고양이가 죽은 채 발견되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그날도 그런 경우라고 생각했습니다. 치워야겠다고 마음먹고 가까이 다가갔는데, 아주 미세하게 움직임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봄비가 내리던 날, 몸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봄비가 내리던 때라 날이 꽤 추웠습니다.
아리는 젖어 있었고, 몸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손으로 조심히 만져봤는데도 거의 미동이 없었습니다. 낯선 사람이 가까이 오면 보통 도망가거나 몸부림이라도 칠 텐데, 그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집으로 가서 고양이 이동장을 가지고 왔습니다. 당시 집에는 바비라는 코리안숏헤어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이동장이 있었습니다.
목덜미를 잡고 이동장에 넣을 때도 아리는 크게 몸부림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기운이 없고 몸 상태가 안 좋았으면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원래 다니던 동물병원으로 바로 데려갔습니다
아리를 이동장에 넣고 바로 원래 다니던 동물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들은 이야기는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당시 선생님 말씀으로는 아리는 생후 6개월 정도로 추정되는 어린 개체였습니다. 그런데 상태는 어린 고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좋지 않았습니다.
피가 흐르던 이유는 방광 쪽 손상이 있었고, 발톱도 빠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영양 상태도 좋지 않았습니다. 더 놀라웠던 건, 그렇게 어린 아리가 출산을 한 흔적이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젖꼭지 하나가 발달해 있었고, 선생님은 출산 후 젖을 물린 흔적으로 보인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여러 마리를 낳았다면 보통 여러 젖이 발달했을 텐데, 딱 하나만 그런 흔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엔 그냥 유기묘라고 생각했지만,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번식장 같은 곳에서 도망쳤거나 학대 상황에서 벗어난 건 아닐까 추정해보기도 했습니다.
아리는 흔히 보는 길고양이 느낌도 아니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아메리칸 숏헤어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주인을 찾아보려고 공지도 올렸습니다
처음부터 우리 집 고양이로 데려와야겠다고 정한 건 아니었습니다.
아리가 품종묘처럼 보였기 때문에 혹시 잃어버린 고양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동네 커뮤니티에도 글을 올렸고, 포인핸드 같은 유실동물 커뮤니티도 확인했습니다. 아리를 발견한 건물에도 공지문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기다려도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아리는 병원에서 회복하고 있었고, 저는 점점 이 아이를 그냥 다시 어딘가로 보낼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름은 아리라고 지었습니다. 순우리말로 응원한다, 힘내라는 뜻이 있다고 해서 그렇게 정했습니다. 그때 제 마음은 딱 하나였습니다.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버텨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리라는 이름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3일 정도 입원했고, 매일 퇴근 후 보러 갔습니다
아리는 병원에서 3일 정도 입원하며 약물치료와 링겔을 맞았습니다.
그 사이 저는 매일 퇴근하고 병원에 들러 아리를 보러 갔습니다. 처음에는 저를 경계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아리 입장에서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제가 가면 가까이 오고, 몸을 비비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괜히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아이가 자기를 살려준 걸 아는 건가.
물론 사람이 마음대로 해석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 순간에는 정말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퇴원 후 우리 집 옷방에서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상태가 조금 호전된 뒤 아리를 퇴원시켜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집에는 이미 바비가 있었기 때문에 바로 합사할 수는 없었습니다. 옷방에 아리를 따로 두고, 밥과 물, 화장실을 준비해줬습니다. 그리고 혹시 혼자 있다가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제가 그 방에 이불을 깔고 같이 잤습니다.
처음에는 제 옆에 오지 않았습니다. 낯선 집, 낯선 냄새, 낯선 사람. 경계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정도 같이 자고 일어나니, 아리가 제 베개 옆으로 와서 자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음을 열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주일 뒤, 바비와 처음 만났습니다
아리와 바비는 일주일 정도 분리해서 지냈습니다.
바비는 이미 냄새와 소리로 아리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아리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조심스럽게 둘을 만나게 했습니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합사가 잘 됐습니다. 서로 크게 싸우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같은 공간에 머물기 시작했습니다.
아리는 그렇게 우리 집에 들어왔습니다.
죽은 줄 알고 다가갔던 계단 밑의 고양이가, 병원에서 버텨주고, 옷방에서 제 베개 옆으로 오고, 바비와 같은 집에서 살기 시작한 겁니다.
다음 글에서는 아리가 집에 적응한 뒤 갑자기 다시 크게 아팠던 날, 그리고 바비가 수혈을 해줬던 새벽 이야기를 이어서 적어보려고 합니다.